nowornever

2008년산 구일모 본문

Following Him

2008년산 구일모

JohnnyKoo 2010. 9. 17. 12:53
여느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한국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때 내 마음 한 구석에 있는 공허한 느낌은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처럼 열심히 살아서 많은 것들을 이룬 후에 찾아오는 허무감은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삶의 목적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지며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던 시간이었다. 아무리 남을 도우면서 착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죽기 직전에 내가 인생을 잘 살았다고 고백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사실 그보다는 내가 항상 착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의지한다는 "종교"를 갖는 것에 대해 처음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종교는 기독교였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심 메세지를 잘 듣고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기독교에 관한 현상들 그리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 이미 큰 거부감과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기독교의 메세지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간혹 어머니를 따라서 성당에 나가긴 했지만 그보다는 김용옥씨의 동양철학 강의와 여러 스님들의 불교 책에 관심이 더 가 있었다.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술과 세상이 주는 여러 즐거움으로 내 공허함의 일부를 채우려고 했었고, 나는 그렇게 마음 한구석이 텅빈 상태로 미국에 오게 되었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학비를 벌면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즐기거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없었다. 주위에 편하게 사는 유학생들을 속으로 비웃으며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과 각오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미국에 올 때 가지고 왔던 그 텅 빈 마음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공허함을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남들이 하는 "신앙생활"을 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항상 성당의 미사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주일에는 미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청년부 모임에 참석하고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 몇 주 청년부 모임에 계속 나가고 청년부 활동에도 참가했지만, 도대체 그 모임안에서는 성서를 찾아볼 수 없었고 그렇게 궁금했던 하나님과 그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길이 없었다. 너무나 놀랐던 것은 세상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그들이 다른 점이 단 한가지도 없었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신앙인으로서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더 철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실망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래도 한번 더 도전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집 근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교회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듯 해 보였다. 항상 밝고 친절하고 서로가 친하게 지내는 듯 해 보이기도 했고, 한편 성경책만 펴고 대화를 나누면 어색하리만큼 심각하고 진지해지는 모습들이 의아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특별한 거부감없이 그곳에서 전하는 메세지를 받아들였고 그 가운데에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가르침들도 많이 있었다. 교회 활동과 행사에 비교적 성실하게 참여한 덕분에 어느덧 나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교회 생활은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공허함을 채웠다고 착각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가끔씩 부흥집회나 찬양예배에서 감정에 복받쳐 울음도 터뜨리고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 하기도 했다. 교회 생활을 점점 더 열심히 하게 되면서 성경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재미없는 책을 도저히 혼자서 읽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목사님은 일주일 내내 보지 않는 책을 주일날 대신 읽어주는 사람이었다. 어느새 교회를 다닌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복음의 메세지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교회 생활에 열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그 공허함이 어느 순간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이미 채워져서 다시는 느끼지 않을 것 같았던 그 공포의 허무함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 때, 가끔씩 나에게 성경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었던 선배들의 말이 메아리처럼 은은히 마음속에 들려왔다. 나는 교회 활동을 잠시 줄이기로 하고, 내 열심으로 해결됐다고 생각했었던 과거의 공허함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때마침 코스타를 통해 만나게 된 분들의 도움으로 성경공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들었던 설교내용과 지식이 오히려 방해가 되어 스스로 말씀을 대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성경을 열심히 읽으려고 하면 할수록 또 다른 좌절감이 계속 찾아왔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신기한 것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내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죄인된 나를 찾아오셨다는 것 즉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속해 있는 그룹을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삭개오가 바로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내가 죄인인 것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속에서 십자가를 통해 내 죄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셨다는 그 말도 안되는 주장을 말씀을 통해 내가 그냥 믿게 된 것이다. 이 신비하고 이상한 과정을 통해 나는 믿음이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작년부터 시작하게 된 성경공부의 주제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다.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공부를 했는데, 돌이켜 보면서 나에게 "이 땅" 이 과연 무엇일까 다시 생각을 해 보았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메마르고 목마르고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 임해야 할 땅은 이 세상도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이나 조국인 한국도 아니고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도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장 절실한 땅은 바로 내 자신이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의 자아과 자존심, 꿈과 야망 즉 내 것을 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부분적인 항복이 아닌 전적인 항복과 전부를 내어드릴 것을 원하셨다. 이러한 Total surrender 와 Total obedience 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항상 뭔가 엄청나게 거룩한 부르심이나 혹은 극단적인 결정 (가족을 떠난다거나, 학업을 그만두는 경우 등) 만을 생각해왔던 것 같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원하실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공부하면서 하나님은 "순종" 과 "항복" 에 경중을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바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님을 알아가며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을 매일 내 마음안으로 초대하지 못했던 이유는 계속적으로 짓게 되는 죄를 주님께 보여드리기 부끄럽고 죄송해서였다. 그러나 "내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책에서처럼,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그 더럽고 지저분한 내 마음 속의 집으로 초대해서 다 보여드리고 해결해주시기를 바라는 것 뿐이었다. "나는 절대로 내 마음속의 집을 깨끗히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내 집에 들어오시는 것이 바로 내 집이 깨끗게 되는 길입니다" 라는 진실된 고백이 정말로 필요했다. 나를 만나주시고 용서하시고 또 아들을 삼아주셨다는 그 천국의 비밀, 어떻게 나같은 사람에게 그 귀한 비밀을 알게하셨는지… 그 사실에 매일 감격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Following Hi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 상 2:11~3장  (0) 2010.10.01
진수의 마지막 기록된 일기  (0) 2010.09.17
용서의 은혜  (0) 2010.09.17
양화진 그리고 이재철 목사님, 펌글  (0) 2010.09.13
다시금 느끼는 것  (0) 201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