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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강아지 본문
어제도 퇴근하는 길에 동물병원 앞에서 15분간 새끼 강아지를 쳐다봤다.
두마리의 요크셔, 두마리의 푸들 , 가장 잘 나간다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채
상자들 안에서 기지개를 펴고 눈을 비비고 애기다운 짓들을 잘 조합해서 하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나를 어떤 존재로 인식을 할까?
나는 그냥 괴물로 보이지는 않을까?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바로 떨어져서 그렇게 독립해나가는
자기들과는 피가 섞이지 않는 괴물같은 존재들이 돈을 주고 자기를 입양해가기를
기다리는 그들의 생각과 사고의 깊이는 사실 매우 한정되어있다.
그 애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나, 이사님한테 눈치보여가며 HART 통신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쩔쩔 매고 있는 매일의 직장 생활이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할때마다 걱정이 산처럼 쌓아져가는 것들이 모두 날아가버린다.
나는 비싼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무조건 싼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커왔고 내가 적응되어진 환경은 나를 만족시킨다. 나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내 소화기관들이 이미 평생을 장기적으로 계약을 해놓은 분류가 있다.
내 정신과 만족감을 느끼는 쪽에서도 비슷하다. 집에 가는 길에 문구점에 들려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려구 노트를 하나 찾고 있었는데 1500원에 모눈종이지를 팔고 있었다. 딱 내가 찾는 거였고 참으로 행복했다. 기계기사 시험 합격했을 때보다 한 20배 정도는 기뻤던 것 같다. 그때는 딱 3초 기뻤는데 이번에 노트산건 어제였는데 지금까지 기쁘다.
쉽게 생각하면 도대체 가치판단기준장치에 어디가 망가져서 그러냐고 바보냐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란 다 그런 것 아닌가.
퇴근길의 산을 내려가는 녹읍이 충만한 그길, 퇴근길에 보고가는 아기 강아지들, 1500원짜리 노트,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는,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들에 대한 뒤늦은 이해로 찾는 기쁨, 보람,
그저께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 나보다 4살 정도 많아보이는 한 아저씨가
내앞에 앉아있었는데 내 가방이 무거워 보였는지 들어주겠다고 했다.
절대로 내 가방을 훔칠 의도로 보이진 않았다. 사실 훔쳐가도 그 안에 별로 중요한건 없었다.
어쨌든 그런 따뜻한 마음씨가 오고가는 것에 대한 행복이 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잘 몰랐었는데, 예전에 볼티모어 기쁨씨가 이런말을 한적이 있었다.
"일모는 동물을 좋아해" 라고. 84모임에서 나왔던 짧지만 기억나는 말중에 하나이다.
수진이의 말도 나에게 재인식의 기회가 되었다. 자신은 인간들, 관계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데 비해 동물에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나는 약간 반대인것 같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사실 인간들과의 관계는 정말 어렵고 힘들고 아주 자주는 짜증이 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물들같은 경우는 왠만한 경우는 인간들 보다 훨 낫다.
사람들이 자주 쓰는 '개새끼', '개놈의 자식' 이라는 욕은 정확히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사람 자식' 이 더 악한 욕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 사람만큼 악한 동물? 이 어디있는가? 개 새끼 는 굉장히 귀엽다. 이 세상에 많은 아기 동물들이 귀엽지만 (물론 내 새끼를 낳아보질 않아서일지도) 새끼 강아지 만큼 귀여운 생명체는 없다.
사람새끼에 비해서 개새끼들은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 이유없이 화를 내지도 않으며 이기적이지도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주인의 사랑이다.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이 강아지들이다.
사람새끼들은, 아니 나 자신은 주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 또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기에 사실 우리는 주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죽을때까지 개새끼들보다 못할 수도 있다.
앞으로 개새끼라는 욕을 들으면 참 좋은 칭찬이라 생각을 행야겠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오늘 집에 가는길에도 보고싶다.
나를 쳐다보는 그 순수한 아기 강아지들의 눈망울을.
도대체 무얼 원하는지 알 수 없는 그 촉촉한 눈빛들
두마리의 요크셔, 두마리의 푸들 , 가장 잘 나간다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채
상자들 안에서 기지개를 펴고 눈을 비비고 애기다운 짓들을 잘 조합해서 하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나를 어떤 존재로 인식을 할까?
나는 그냥 괴물로 보이지는 않을까?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바로 떨어져서 그렇게 독립해나가는
자기들과는 피가 섞이지 않는 괴물같은 존재들이 돈을 주고 자기를 입양해가기를
기다리는 그들의 생각과 사고의 깊이는 사실 매우 한정되어있다.
그 애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나, 이사님한테 눈치보여가며 HART 통신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쩔쩔 매고 있는 매일의 직장 생활이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할때마다 걱정이 산처럼 쌓아져가는 것들이 모두 날아가버린다.
나는 비싼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무조건 싼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커왔고 내가 적응되어진 환경은 나를 만족시킨다. 나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내 소화기관들이 이미 평생을 장기적으로 계약을 해놓은 분류가 있다.
내 정신과 만족감을 느끼는 쪽에서도 비슷하다. 집에 가는 길에 문구점에 들려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려구 노트를 하나 찾고 있었는데 1500원에 모눈종이지를 팔고 있었다. 딱 내가 찾는 거였고 참으로 행복했다. 기계기사 시험 합격했을 때보다 한 20배 정도는 기뻤던 것 같다. 그때는 딱 3초 기뻤는데 이번에 노트산건 어제였는데 지금까지 기쁘다.
쉽게 생각하면 도대체 가치판단기준장치에 어디가 망가져서 그러냐고 바보냐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란 다 그런 것 아닌가.
퇴근길의 산을 내려가는 녹읍이 충만한 그길, 퇴근길에 보고가는 아기 강아지들, 1500원짜리 노트,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는,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들에 대한 뒤늦은 이해로 찾는 기쁨, 보람,
그저께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 나보다 4살 정도 많아보이는 한 아저씨가
내앞에 앉아있었는데 내 가방이 무거워 보였는지 들어주겠다고 했다.
절대로 내 가방을 훔칠 의도로 보이진 않았다. 사실 훔쳐가도 그 안에 별로 중요한건 없었다.
어쨌든 그런 따뜻한 마음씨가 오고가는 것에 대한 행복이 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잘 몰랐었는데, 예전에 볼티모어 기쁨씨가 이런말을 한적이 있었다.
"일모는 동물을 좋아해" 라고. 84모임에서 나왔던 짧지만 기억나는 말중에 하나이다.
수진이의 말도 나에게 재인식의 기회가 되었다. 자신은 인간들, 관계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데 비해 동물에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나는 약간 반대인것 같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사실 인간들과의 관계는 정말 어렵고 힘들고 아주 자주는 짜증이 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물들같은 경우는 왠만한 경우는 인간들 보다 훨 낫다.
사람들이 자주 쓰는 '개새끼', '개놈의 자식' 이라는 욕은 정확히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사람 자식' 이 더 악한 욕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 사람만큼 악한 동물? 이 어디있는가? 개 새끼 는 굉장히 귀엽다. 이 세상에 많은 아기 동물들이 귀엽지만 (물론 내 새끼를 낳아보질 않아서일지도) 새끼 강아지 만큼 귀여운 생명체는 없다.
사람새끼에 비해서 개새끼들은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 이유없이 화를 내지도 않으며 이기적이지도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주인의 사랑이다.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이 강아지들이다.
사람새끼들은, 아니 나 자신은 주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 또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기에 사실 우리는 주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죽을때까지 개새끼들보다 못할 수도 있다.
앞으로 개새끼라는 욕을 들으면 참 좋은 칭찬이라 생각을 행야겠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오늘 집에 가는길에도 보고싶다.
나를 쳐다보는 그 순수한 아기 강아지들의 눈망울을.
도대체 무얼 원하는지 알 수 없는 그 촉촉한 눈빛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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