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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본문
교회 새신자부에서 전화가 왔다. 심방 날짜를 잡아달란 이야기였다.
토요일날 저녁에 교회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교역자분과 심방을 하게 될 것 같다.
나아닌 나를 보여주기 위한 모습도 이젠 싫고,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오해할 정도로 나의 고민들을 적나라하게 들춰내기도 싫다. 이젠,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대한 고민을 버려버려야겠다. 버려버려야겠다. 이거 왠지 말에 운율이 있다. '버리다' 와 '-버리다' 라는 연결어가 같아서 생긴 일이겠지. 나중에 '시'를 혹시라도 쓰게 된다면 인용해야겠다.
어제는 자기전에 오락을 했다. 6경기 연속 지고 비기고 지고 비기고 해서 리그 1위였는 맨유가 4위까지 떨어지고 그나마 잘나가던 우에파컵에서도 탈락을 해서 패드를 던질뻔했다.
참다 참다 아직까지 한번도 그래보지 않은 반칙을 했다. 저장된 데이터를 다시 로드해서 다시 시작했다.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를 바꾼 것이었다. =.=
살아가면서, 과거로 돌아가 아 이부분 만큼은 바꾸고 싶다라는 생각을 아주 자주 했던 적이 있었다. 과거에 수치스럽게 생각되었던 기억들이나, 혹은 굉장히 뻘쭘했던 장면들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분들이 있다.
사람은 현재를 살고 있지만, 과거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다. . 고 믿는다.
인간은 영원의 존재로부터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이 영원의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철학의 출발이지 않는가.
이 철학의 질문의 뼈대에서,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덧붙여질 때에, 그것이 참으로 의미있는 철학이 될 수 있다. 이 뼈대에 인간의 지혜로 덧붙인 것들이, 현재의 '지식' '철학' 혹은 '과학' 이 아니던가.
이 질문으로부터 멀어질 때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인생의 목적에 대해 멀어질 때마다,
우리는 현재에 집착하게 되고, 근시안적인 미래에 대해 집착하게 된다.
그럴때마다 주위에 한두명씩 사고로 인생을 마감하는 측근들이 생기면 우리 인간들은 당황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인식이 되어질 때마다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무지무지당황스러운 것이다. 지식적으로는 쉽지만 경험하기엔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 지식과 경험상에서, 성경은 둘로 나누지 말라고 한다. 두 부분을 다 포함하는 더 큰 범위의 '생명' 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09년에 나에게 주신 가장 중요하고도 내 인생의 전환점인 부분이 바로.
'과정' 의 중요성이다. 언제나 Goal oriented 인 나에게, 신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과정을 보시고 과정 하나하나가 결과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이후로, 사람을 깔보는 것도 안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주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안깔본다는 말은 아니다.
토요일날 저녁에 교회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교역자분과 심방을 하게 될 것 같다.
나아닌 나를 보여주기 위한 모습도 이젠 싫고,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오해할 정도로 나의 고민들을 적나라하게 들춰내기도 싫다. 이젠,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대한 고민을 버려버려야겠다. 버려버려야겠다. 이거 왠지 말에 운율이 있다. '버리다' 와 '-버리다' 라는 연결어가 같아서 생긴 일이겠지. 나중에 '시'를 혹시라도 쓰게 된다면 인용해야겠다.
어제는 자기전에 오락을 했다. 6경기 연속 지고 비기고 지고 비기고 해서 리그 1위였는 맨유가 4위까지 떨어지고 그나마 잘나가던 우에파컵에서도 탈락을 해서 패드를 던질뻔했다.
참다 참다 아직까지 한번도 그래보지 않은 반칙을 했다. 저장된 데이터를 다시 로드해서 다시 시작했다.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를 바꾼 것이었다. =.=
살아가면서, 과거로 돌아가 아 이부분 만큼은 바꾸고 싶다라는 생각을 아주 자주 했던 적이 있었다. 과거에 수치스럽게 생각되었던 기억들이나, 혹은 굉장히 뻘쭘했던 장면들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분들이 있다.
사람은 현재를 살고 있지만, 과거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다. . 고 믿는다.
인간은 영원의 존재로부터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이 영원의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철학의 출발이지 않는가.
이 철학의 질문의 뼈대에서,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덧붙여질 때에, 그것이 참으로 의미있는 철학이 될 수 있다. 이 뼈대에 인간의 지혜로 덧붙인 것들이, 현재의 '지식' '철학' 혹은 '과학' 이 아니던가.
이 질문으로부터 멀어질 때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인생의 목적에 대해 멀어질 때마다,
우리는 현재에 집착하게 되고, 근시안적인 미래에 대해 집착하게 된다.
그럴때마다 주위에 한두명씩 사고로 인생을 마감하는 측근들이 생기면 우리 인간들은 당황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인식이 되어질 때마다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무지무지당황스러운 것이다. 지식적으로는 쉽지만 경험하기엔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 지식과 경험상에서, 성경은 둘로 나누지 말라고 한다. 두 부분을 다 포함하는 더 큰 범위의 '생명' 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09년에 나에게 주신 가장 중요하고도 내 인생의 전환점인 부분이 바로.
'과정' 의 중요성이다. 언제나 Goal oriented 인 나에게, 신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과정을 보시고 과정 하나하나가 결과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이후로, 사람을 깔보는 것도 안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주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안깔본다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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