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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심문관 본문

Following Him

대심문관

JohnnyKoo 2011. 1. 27. 23:34
"내 극시의 배경은 16세기 스페인의 세비야를 무대로 하고 있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매일 장작더미가 불타오르던 무서운 종교재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활활 타오르는 화형장에서
사악한 이단자들이 불타 죽도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이번 강림은 그가 전에 약속했던 것처럼 천국의 영광에 싸여 세상이 끝나는 날에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비추는 번갯불'철머 나타나는 건 결코 아니야. 그리스도는 다만 잠시 자기 자식들을 방문하고 싶었던 거지. 그리하여 그는 이단자들을 불태우는 불길이 무섭게 타오르는, 바로 그 땅을 택하신 거지.

끝없이 자비로우신 그리스도는 15세기 전에 3년간 사람들 사이를 편력하실 때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민중 속에 나타나신 거야. 마침 그 웅장하고 훌륭한 '타오르는 화형장'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국왕을 비롯해 대신, 기사, 추기경, 아름다운 궁녀들과 세비야의 수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심문관인 추기경의 지휘 아래 거의 1백명에 가까운 이단자들을 한꺼번에 처형시킨 다음날 그리스도는 이 남쪽 도시의 "뜨거운 광장"에 강림했어. 그리스도는 눈에 띄지 않게 슬며시 그곳에 모습을 나타낸 거야. 그러나 기이하게도 모두가 그분이 그리스도임을 순식간에 알아챘단 말이야. 바로 이 부분이 내 극시 중에 가장 뛰어난 백미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즉 민중이 어떻게 그를 알아보았을까 하는 점 말이야. 민중은 억누를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그리스도를 향해 다가각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지. 그는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없이 군중 속을 걸어가고 있었어. 사랑의 태양이 그의 가슴속에 타오르고, 그의 눈에서는 광명과 교화와 권능의 빛이 흘러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떨게 했어.

(중략)

바로 이 순간 성당 옆 광장을 대심문관인 추기경이 지나가고 있었어. 이 대심문관은 거의 구순에 가까우 ㄴ노인이었지만 키가 크고 몸이 꼿꼿했으며, 여윈 얼굴에 눈은 움푹 패어있었지만 아직도 두 눈에는 불꽃같은 광채가 번쩎이고 있었지. 오, 그는 최근 로마 교회의 적들을 불태운 민중 앞에 입고 나왔던 찬란한 추기경 복장이 아니라 낡아빠진 허름한 성의를 걸치고 있었어. (중략)
그는 모든 것을 다 보았어. 사람들이 그의 발밑에 관을 내려놓는 것도 보았고 소녀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봤어. 그러자 예수의 얼굴이 어두워졌어. 숱 많은 흰 눈썹이 찌푸려지고 두 눈에선 분노의 불꽃이 튀었어. 그는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며, 그를 체포하라고 호위병에게 명령햇지. (중략)

'숨막히고 어두운 세비야의 밤'이 찾아오자 대기는 월계수와 레몬 향기로 가득 차 있었어. 그런데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감방 철문이 열리고, 늙은 대심문관이 등불을 들고 감방으로 들어왔어.
그는 문 앞에 선 채 1,2분동안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어. 이윽고 조용히 다가오더니 탁자위에 등불을 내려놓고 이렇게 말하지. '정말 당신이오? 당신이오?' 대답이 없자 , 그는 곧바로 말을 이었어.

'대답하지 마시오. 말하지 마시오. 하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소. 게다가 당신은 이전에 말한 것 외엔 더이상 말을 할 권리가 없소. 도대체 왜 우리를 방해하러 왔소? 당신이 우리를 방해하러 왔다는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거요. 그러나 당신에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나 알고 있는 거요?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또 알고 싶지도 않소. 당신이 진짜건 가짜건 아무래도 좋소. 어쨌든 나는 내일 당신을 재판에 회붛여 극악무도한 이단자로 화형에 처해버리고 말 것이오. 그러면 오늘 당신 발에 입을 맞춘 민중이, 내일은 내가 손가락만 움직여도 당신이 불타고 있는 모닥불 속으로 다투어 장작을 던져 넣을 거요. 그걸 당신은 아시겠소? 아마 당신은 알고 있을 테지'
(중략)
말없이 듣고만 있던 알료샤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건 터무니 없는 망상인가요, 아니면 그 노인의 오해인가요?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모순이 아닐까요?'

'그럼 그것이 후자라고 해두자...노인은 이미 아흔 살이 되었고, 전부터 비정상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더욱이 그 죄수의 용모만으로도 노인은 강한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것은 죽음을 앞둔 아흔 노인의 망령이나 환상일지도 몰라. 그리고 또 전날 1백명이나 되는 이단자들을 화형에 처했기 때문에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도 모르고. .... 요컨데 이 노인은 단지 자기 마음속에 담고 있던 것을 모두 내뱉고 싶었을 뿐이라는 거지. 90년 동안 침묵소에 담아두고 있던 것을 입밖에 낸 것 뿐이라는 말야"

"그런데도 포로는 여전히 가만있는 겁니까? 상대방을 바라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구요?"

"그야 물론 그랬지. 어쩔 수 없었거든. 노인이 '이전에 말한 것 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일 권리가 없다'고 그에게 단언하고 있으니 말이야. 내 생각으로는 바로 여기에 로마 카톨릭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 포함되어있어.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교황에게 넘겨주었으니, 지금은 모든 것이 교황의 수중에 있소. 그러니 이제는 제발 다시 나타나지 말았으면 좋겠소. 적어도 어느 시기가 올 때까지는 방해하지 마시오' 라고 하는거야. 그들은 이런 말을 입으로만 노니까리는 게 아니라 책에까지 쓰고 있어. 적어도 예수회 신자들은 말이야. 나도 예수회 책을 읽은 적이 있어. 대심문관은 '도대체 당신은 당신이 떠나온 세계의 비밀을 단 한가지라도 우리에게 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에게 묻고는 상대방을 대신해서 이렇게 대답하지. '아니, 그럴 권리는 없소. 그건 당신이 옛날에 한 말에 무엇 하나 덧붙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또 당신이 이 지상에 있을 때 그처럼 강력히 주장했던 자유를 민중에게서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소. 당신이 지금 새로이 전하려는 것은 민중의 신앙의 자유를 위태롭게 할 뿐이오. 왜냐하면 그것이 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지. 그런데 당신에게는 민중의 자유가 이미 1천 5백년전부터 가장 귀중한 것이었잖소.

그때 <나는 너희들을 자유롭게 해주었노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은 당신이잖소. 그래서 당신이 지금 그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게 된 거요.' 생각에 잠긴 듯한 미소를 띠며 노인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지. '사실 우리는 이 사업을 위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는지 모르오.' 준엄한 눈초리로 상대바을 노려보며 노인은 다시 말을 이었지. '결국 우리는 당신의 이름으로 마침내 이 사업을 완성했소. 지난 15세기 동안 우리는 자유를 위해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이제야 견고하게 완성했단 말이오. 당신은 온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화를 낼 가치도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있소. 그렇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민중은 어느 때보다 자신들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믿고 있소. 그러나 그 인간들은 자진해서 자유를 우리에게 바친거요. 겸손하게 우리의 발밑에다 그것을 갖자 바쳤단 말이요. 그걸 완성한건 바로 우립니다. 당신이 한 행동이 과연 그 자유였던 거요?'

'당신은 경고와 주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거절했소. 그러나 다행히 당신은 세상을 떠날 때 그 사업을 우리에게 넘겨주었소. 그것을 당신 입으로 확실히 약속했고, 인간을 묶고 푸는 권리를 넘겨주었소. 그러니 이제와서 당신이 그 권리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단느 말이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당신이 우리 일을 방해하러 온거요?'

(중략)
(중략)
(중략)
(중략)

'당신은 당신의 <선택된 사람들>을 자랑하지만, 사실 당신에겐 그 선택된 사람들 박엔 없지 않소.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거요. 당신에게 선택될 만큼 강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다 지쳐 정신력과 정력을 점점 잃어 가는데,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당신을 향해 자유의 반기를 높이 들게 될 것이오. .... 오오, 우리는 그들을 설득할 것이오. <너희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자유를 버리고 우리에게 복종할 때, 비로소 너희는 완벽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자 어떻소? 우리의 말이 옳으냐, 틀리냐 이 말이오! 그들은 반드시 우리의 말이 옳다고 승복할 것이오. 당신이 부여한 자유 덕분에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노예 상태와 혼란 속에 빠졌던가를 상기할 테니 말이오. 자유며 지혜, 학문은 그들을 무서운 밀림으로 끌고 가 끔찍한 기적과 해결할 수 없는 신비 앞에 세움으로써 그들 가운데 반항적이고 사나운 자들은 스스로 제 목숨을 끊을 것이고, 반항적이긴 하지만 겁이 많은 자들은 서로를 죽이게 될 것이며, 나머지 제 3의 부류에 속하는 무력하고 가련한 자들은 우리의 발밑으로 기어와서 이렇게 외치게 될 것이오.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옳았습니다. 당신들많이 하느님의 신비를 지니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네들한테로 돌아왔습니다. 제발 우리들을 구해주십시오>

우리는 그들 스스로가 얻은 빵을 그들 손에서 거둬들였다가, 어떤 기적적인 행함없이 다시 그들에게 분배해줄 것이오. 그들은 우리가 돌을 빵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이 빵을 받을 때 기뻐하는 이유는 빵 자체보다 오히려 그것을 우리의 손에서 받는다는 사실 때문이오. 전에 우리가 없을 때는 그들 스스로가 획득한 빠이 그들의 손에서 돌로 변해버렸지만, 우리의 품안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 돌이 그들의 수중에서 다시 빵으로 변한 것을 그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중략)

말해보시오! 양떼를 흩어지게 하여 이리 저리 낯선 길로 쫓아버린 것은 대체 누구냔 말이오! 그러나 그 양떼들은 다시 모여, 이번에는 영원히 얌전하게 있을 것이오. 그때 우리는 그들에게 타고난 천성대로 조용하면서도 소박하고, 연약한 피조물에 알맞은 행복을 줄 것이오. (중략)

우리가 화를 내면 그들은 전전 긍긍하며 아녀자들처럼 금방 눈물을 흘릴 것이고, 우리가 좋은 낯으로 손짓을 하면 그들은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애처럼 행복에 겨워 노래를 부르며 희희낙락할 것이오. 물론 우리는 그들에게 노동을 시키겠지만, 그들의 여가 시간에는 어린애다운 놀이와 노래와 합창, 천진난만한 춤으로 시간을 즐기게 하겠소. 그렇소! 우리는 그들의 죄까지 용서해주겠소. 그들은 무력하고 의지가 없는 자들이므로 죄를 용서해주면 어린애처럼 우리를 따르게 될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죄든지 우리의 허락만 받으면 모두 속죄될 것이라고 말해줄 것이오. 죄악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중략)

예언에 의하면, 당신은 이 세상에 와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둔다고 했소. 선택받은 사람들과 위대한 힘을 가진 자들을 거느리고 온다고 했소.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겠소. 그들은 다만 자기 자신을 구원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주었다고.그 때는 우리가 일어나 죄없는 몇억의 행복한 아이들을 당신한테 가리켜 보일 것이오. 그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의 죄를 떠맡은 우리는 당신 앞을 가로막고, <자 우리를 심판할 용기가 있거든 어서 심판해보라 !> 고 외칠 것이오 알겠소? 나는 당신 따윈 조금도 무섭지가 않소. 나 역시 황량한 들판에서 메뚜기와 풀뿌리로 연명해본 일이 있으니까.

(중략) 나는 내일 당신을 화형에 처하겠소. 그렇게 아시오. Dixi(내 할말은 이제 다했소!)'


"나는 이렇게 끝을 맺기로 했어. 심문관은 말을 마치고 얼마 동안 죄수의 대답을 기다렸지. 그는 상대방의 침묵이 괴로웠어. 그러나 죄수는 조용히 눈을 들여다보며 아무 말 없이 그냥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지. 노인은 무섭고 괴로운 말이라도 좋으니 뭐라고 말해 주기를 기대했어. 이 때 죄수가 말없이 노인에게 다가오더니, 구십 나이의 그 핏기 없는 노인의 입술에 조용히 입맞춤을 했지. 그것이 대답의 전부였어. 노인은 부르르 몸을 떨었지. 그는 입술 양끝이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어. 그는 곧 문쪽으로 걸아가 문을 열어젖히고는 죄수를 향해 '자 어서 나가시오! 그리고 다시 오지 마시오. 드번 다시 오지 말란 말이오! 앞으로 영원히! ' 이렇게 말하고는 그를 '어둠의 광장'으로 내보냈어. 죄수는 조용히 떠나는거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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