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ornever
사람이었네 본문
어느 문닫은 상점
길게 늘어선 카페트
갑자기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러를 버는
난 푸른빛 커피
향을 자세히 맡으니
익숙한 땅,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
열매의 주인
땅의 주인
문득, 어제산 외투
내 가슴팍에 기대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어느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공장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자본이란 이름의, 세계라는 이름의,
정의라는 이름의, 세계라는 이름의,
정의라는 이름의, 개발이란 이름의,
세련된 너의 폭력, 세련된 너의 착취,
세련된 너의 전쟁, 세련된 너의 파괴)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 라는 노래이다.
노래 가사는 ....그냥 감상하는 차원에선 참 좋은데 굳이 해석하자면 참 어렵다.
이런 대중가요는 수능 언어영역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어 교과서에 실려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마 외국 교과서에 먼저 번역되어 실릴질도 몰른다. 선수를 빼앗겨선 안되지
지금은 업무가 모두 끝나고 모두가 퇴근하고 어두 컴컴한 실험실을 앞에 두고 컴컴한 사무실에 혼자 글을 쓰고 있다.
사장님이 지나가다 보시면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구나 라고 착가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난 업무가 끝나고 놀고 있을뿐이다.
사람은 언제나 특정한 시기에 영향을 받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사람일수도, 책일수도, 영화일 수도, 음악일 수도, 어떤 한 글귀 일수도 있다.
난 한동안 안철수씨의 자서전에 꽤 심취해 있었다. 두어달 정도 ? 그래서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사업에 대해서도 쓸데없는? 상상과/망상이 엄청나게 부풀어 오르면서 내 노트에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적기도 했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공부에 힘을 쓰기도 했었고 (요즘은 전보단 뜸하지만 서도) 프로젝트에 시간을 많이 쏟기도 했었다.
요즘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건, 한 50대쯤 됬을거라 생각하는 한 중년? 아저씨의 블로그 글이다. 거의 매일 들어가서 확인하고 읽게 되는데, 50대라는건 순전히 내 추정이다. 왜냐하면 88세 된 노모께서 치매에 걸리셔서 병상에 계시는데, 주로 요즘 글들이 그 노모와 노모를 수발드는 아들의 모습,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경과 세상과 삶에 대해 정말 뭔진 모르겠지만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안가는 것 같기도 하고 공감은 기름종이에 기름 묻듯이 되버리는 이 글들은 무언가..
88세의 치매가 든 노모를 돌보며 여러가지 생각들과 고통과 힘듦과 삶과 죽음 그리고 예수와 믿음에 대해, 솔직하게, 그렇지만 절제된 언어로,
고난중에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그렇지만, 아픈 것에 대한 호소로, 진실된 기도로, 무엇이 진실된 기도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들이 어우러진 좀, 재미없는 글들이다.
난 왜 이글에 빠져 요즘을 살아갈까? 공감이 되서 그럴거라 생각된다. 이 블로거 아저씨도, 어떻게 보면 참 외로워 보인다.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노모님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그 관계를 통해서 고난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고 그렇지만 예수님에 대한 강한
신뢰가 그를 감싸고 있음을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점이 무엇인가. 빠진 점은, 예수에 대한 강력한 신뢰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말처럼 무슨 머리띠를 메고 예수를 따르는 그런 무지막지한 그런건 아닌것 같고, 아픔중에 신음속에 끝까지 놓지 않는 그분에 대한 신뢰 뭐 그런거 아닐까?
요즘드는 무력한 생각중 하나는.. 내 삶 하나가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라는 생각들이다. 자존감이 없어진걸까 ..
내 삶, 끼룩 끼룩 이리저리 열심히 살다보면 어찌 어찌 살아볼 듯도 한데.. 그래서 그게 무언가? 잘 모르겠다 라는 생각들..
하나님이 내 삶을 통해 이루실걸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고, 아가서를 읽어봐라 하나님이 널 얼마나 사랑하는건데 등등등등
여러가지 조언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글쎄.. 정말 내 삶이 어떻게 되냐가 이 지구상에 그렇게 중요할까? 상대적인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거고 아니면 아닌거고..
그냥 어떤 흐름이 있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강물이 높은 고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하나님의 뜻 안에서 물흐르듯 사는것.. 너무 패배주의적 생각이고 순종이 없기 때문에 삶의 변화가 없어서 일까?
코스타가 다시 시작되나 보다. 당연히 중부로 또 사람들이 운전하고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아 스크랜튼으로 바뀌었지..
언제부터지? 작년부터인가.. 아 이젠 생각도 잘 안나네. 내가 미국을 떠난건 작년이었나? 머리가 띵하다.
코스타의 분위기, 그 설레임, 아 그런게 생각이 난다. 앤더슨의 그 풀냄새도 생각이 나고 밤에 그 가로등불도 생각이 난다. 왠지 정겹다.
얼마전에 드라마 '레버리지'를 보는데 시카고 그 호수주변 다리가 나왔다.
3년전인가 시카고를 놀러갔을때, 그 독립기념일, 뭔가 요즘 날씨. 아 ! 오늘이였구나...
그래 오늘같은 그 뭔가 습습하고 더운 이 더위. 수박이 필요했던 바로 그 날씨에 우린 모두 시카고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걸었고, 맛없는것도 정말 많이 먹었다. 그립네..
그 시카고 하늘이 그립다. 그 공기도 그립고..
왜 난 내가 있는 지금 이 곳의 공기와 하늘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일까?
난 괴물이다.
길게 늘어선 카페트
갑자기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러를 버는
난 푸른빛 커피
향을 자세히 맡으니
익숙한 땅,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
열매의 주인
땅의 주인
문득, 어제산 외투
내 가슴팍에 기대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어느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공장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자본이란 이름의, 세계라는 이름의,
정의라는 이름의, 세계라는 이름의,
정의라는 이름의, 개발이란 이름의,
세련된 너의 폭력, 세련된 너의 착취,
세련된 너의 전쟁, 세련된 너의 파괴)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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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 라는 노래이다.
노래 가사는 ....그냥 감상하는 차원에선 참 좋은데 굳이 해석하자면 참 어렵다.
이런 대중가요는 수능 언어영역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어 교과서에 실려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마 외국 교과서에 먼저 번역되어 실릴질도 몰른다. 선수를 빼앗겨선 안되지
지금은 업무가 모두 끝나고 모두가 퇴근하고 어두 컴컴한 실험실을 앞에 두고 컴컴한 사무실에 혼자 글을 쓰고 있다.
사장님이 지나가다 보시면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구나 라고 착가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난 업무가 끝나고 놀고 있을뿐이다.
사람은 언제나 특정한 시기에 영향을 받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사람일수도, 책일수도, 영화일 수도, 음악일 수도, 어떤 한 글귀 일수도 있다.
난 한동안 안철수씨의 자서전에 꽤 심취해 있었다. 두어달 정도 ? 그래서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사업에 대해서도 쓸데없는? 상상과/망상이 엄청나게 부풀어 오르면서 내 노트에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적기도 했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공부에 힘을 쓰기도 했었고 (요즘은 전보단 뜸하지만 서도) 프로젝트에 시간을 많이 쏟기도 했었다.
요즘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건, 한 50대쯤 됬을거라 생각하는 한 중년? 아저씨의 블로그 글이다. 거의 매일 들어가서 확인하고 읽게 되는데, 50대라는건 순전히 내 추정이다. 왜냐하면 88세 된 노모께서 치매에 걸리셔서 병상에 계시는데, 주로 요즘 글들이 그 노모와 노모를 수발드는 아들의 모습,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경과 세상과 삶에 대해 정말 뭔진 모르겠지만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안가는 것 같기도 하고 공감은 기름종이에 기름 묻듯이 되버리는 이 글들은 무언가..
88세의 치매가 든 노모를 돌보며 여러가지 생각들과 고통과 힘듦과 삶과 죽음 그리고 예수와 믿음에 대해, 솔직하게, 그렇지만 절제된 언어로,
고난중에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그렇지만, 아픈 것에 대한 호소로, 진실된 기도로, 무엇이 진실된 기도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들이 어우러진 좀, 재미없는 글들이다.
난 왜 이글에 빠져 요즘을 살아갈까? 공감이 되서 그럴거라 생각된다. 이 블로거 아저씨도, 어떻게 보면 참 외로워 보인다.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노모님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그 관계를 통해서 고난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고 그렇지만 예수님에 대한 강한
신뢰가 그를 감싸고 있음을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점이 무엇인가. 빠진 점은, 예수에 대한 강력한 신뢰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말처럼 무슨 머리띠를 메고 예수를 따르는 그런 무지막지한 그런건 아닌것 같고, 아픔중에 신음속에 끝까지 놓지 않는 그분에 대한 신뢰 뭐 그런거 아닐까?
요즘드는 무력한 생각중 하나는.. 내 삶 하나가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라는 생각들이다. 자존감이 없어진걸까 ..
내 삶, 끼룩 끼룩 이리저리 열심히 살다보면 어찌 어찌 살아볼 듯도 한데.. 그래서 그게 무언가? 잘 모르겠다 라는 생각들..
하나님이 내 삶을 통해 이루실걸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고, 아가서를 읽어봐라 하나님이 널 얼마나 사랑하는건데 등등등등
여러가지 조언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글쎄.. 정말 내 삶이 어떻게 되냐가 이 지구상에 그렇게 중요할까? 상대적인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거고 아니면 아닌거고..
그냥 어떤 흐름이 있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강물이 높은 고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하나님의 뜻 안에서 물흐르듯 사는것.. 너무 패배주의적 생각이고 순종이 없기 때문에 삶의 변화가 없어서 일까?
코스타가 다시 시작되나 보다. 당연히 중부로 또 사람들이 운전하고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아 스크랜튼으로 바뀌었지..
언제부터지? 작년부터인가.. 아 이젠 생각도 잘 안나네. 내가 미국을 떠난건 작년이었나? 머리가 띵하다.
코스타의 분위기, 그 설레임, 아 그런게 생각이 난다. 앤더슨의 그 풀냄새도 생각이 나고 밤에 그 가로등불도 생각이 난다. 왠지 정겹다.
얼마전에 드라마 '레버리지'를 보는데 시카고 그 호수주변 다리가 나왔다.
3년전인가 시카고를 놀러갔을때, 그 독립기념일, 뭔가 요즘 날씨. 아 ! 오늘이였구나...
그래 오늘같은 그 뭔가 습습하고 더운 이 더위. 수박이 필요했던 바로 그 날씨에 우린 모두 시카고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걸었고, 맛없는것도 정말 많이 먹었다. 그립네..
그 시카고 하늘이 그립다. 그 공기도 그립고..
왜 난 내가 있는 지금 이 곳의 공기와 하늘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일까?
난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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